아이 학교에 감기 걸린 친구들이 꽤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 주 전부터 저 또한 왠지 모르게 몸도 무겁고 기침도 좀 하고, 계속 피로감을 느끼며 헤롱헤롱거리는 상태랍니다. 남편은 특별한 감기증상은 안 보이지만, 엄청난 피로감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답니다.
그런 남편을 위해 보양식은 못 해주지만, 단백질 위주의 도시락을 해 주기로 합니다.
남편의 새벽 도시락 싸기
일어나자마자 바로 도시락을 싸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잠시 30분 정도 커피를 한잔 마시며 멍을 때려 줍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4시 30분! 도시락에 싸줄 닭고기 볶음을 준비해 봅니다.
부드러운 닭 허벅지 살을 이용하여 냉장고에 있는 각종 채소들을 다 넣고 비몽사몽간에 볶아 줍니다. 순서를 차근차근 지켜주면 너무 좋겠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그런 것은 접어두고 닥치는 대로 하는 게 저만의 요리공법입니다.
단점은 넣야 할 건 안 넣고, 넣지 않아도 되는 건 넣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건, 마지막 단계에서 간만 제대로 맞으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답니다. 오히려 어떤 날은 너무 정성껏 한다고 공들여 한 음식이 대충 만든 날만 못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너무 대충 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너무 바쁠 땐 좀 봐줄 줄 아는 너그러움이 필요하겠습니다.
오늘은 닭 볶음을 다 만들고 보니 채소들 중 초록색 친구들이 빠졌네요. 생각없이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완성된 닭 채소 볶음과 전날 먹고 남은 코스트코 '맥 앤 치즈'도 한켠에 사이좋게 넣어 줍니다. 반찬은 딱히 필요 없는 덮밥계통의 닭 볶음이지만, 또 빠지면 아쉬운 게 반찬인지라 김치라도 조금 싸 줘 봅니다. 아마 오늘도 마음씨 좋은 남편은 제 기분 좋으라고 남김없이 깨끗하게 다 비운 도시락을 가볍게 들고 돌아오지 않을까요?
마무리
특별한 엄마의 반찬
저희 엄마는 아침잠이 좀 많은 편이세요. 그렇다 보니 제가 더 일찍 일어나 학교준비를 마치고 엄마가 일어나시기를 기다릴 때가 종종 있었답니다. 그런 엄마가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셨을 겁니다. 아침은 못 해 줘도 도시락만큼은 열과 성을 다해 싸주셨더랬지요. 늦잠을 주무셔서 못 싸 주실 때도 곧잘 있었는데, 그럴 때면 엄마가 직접 도시락 셔틀에 나섭니다. 오빠와 저의 도시락을 12시까지 직접 가져다주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답니다.
때론 학교 수의실에 맡기기도 하시고, 직접 들고 교실로 오기도 하셨고요. 저의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했었는데요. 정말 정성이 가득한 예쁜 도시락이었거든요.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오늘은 또 무슨 반찬들이 있을까?' 두근두근 기대하며 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으셨던 저희 엄마는 도대체 그 맛있는 반찬들을 어디서 공급해 오셨던 걸까요? 8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반찬을 살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었답니다. 보통 주부들이 직접 본인만의 노하우로 손수 만드셨지요. 그러나 저희 엄마는 달랐습니다. 세대를 앞서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드물기는 했지만 마트에서 저녁시간 때에 반찬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요. 제가 알기로 저희 엄마를 비롯한 몇몇 같은 뜻을 품은 엄마들이 마트에 함께 의견을 제시하여 이뤄낸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남편들이 퇴근하기 전 시간 때에 저희 엄마와 뜻을 함께 하신 몇몇 분들이 마트에 줄을 서서 반찬을 구매하셨다고 해요.
저도 처음엔 몰랐었는데, 어느 날 학원 끝나고 친구들과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갔다가 어느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줄을 서 계셨습니다. 거기에 저희 엄마도 계시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엄마! 여기서 뭐 해?" 했는데, 너무도 당황해하는 엄마의 표정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줄 서는 젊은 엄마: "뭘 뭐 해. 저녁거리 사러 왔지. 넌 여기 왜 왔어? 엄마 얼른 장 봐서 갈 테니 넌 빨리 집에 가 있어."
눈치 없는 딸: "에이~ 나 엄마랑 같이 집에 갈래~"
나름 애교 섞어 말하는 순간, 어떤 아주머니가 커다란 쟁반에 무언가를 들고 나오시더라고요. 매대에 올리기도 전, 순식간에 기다리고 계시던 여러 어머니들께서 그 아주머니를 에워싸더니 장바구니에 뭔가를 막 담는 겁니다. 엄마도 재빠른 속도로 몇 개를 잡긴 잡으셨는데, 영 만족스러운 개수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정말 순식간에 그 큰 쟁반이 텅 비었습니다. 다들 본인들이 뭘 잡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서로들 뭘 잡았는지 공유하고 원치 않는 건 그 자리에서 맞교환하고 그러더군요. 저는 뭔지는 몰라도 되게 좋은 건가 싶어서 엄마한테 물어봤지요.
눈치 없는 딸: " 엄마! 엄마! 엄마도 뭐 좋은 거 잡았어?"
줄서는 젊은 엄마: "너 때문에 몇 개 못 샀잖아. 넌 꼭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방해를 하더라!"
짜증이 많이 나 보였습니다. 그곳에 더 있다가는 또 엄마한테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겠기에 일단 무서워니 저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네요.
그날저녁 다용도실엔 각종 양념들이 묻은 여려 개의 스티로폼들이 한쪽 구석에 모아져 있었고, 저녁으로 맛있는 반찬들이 식탁에 한가득 올라왔더랬지요.
30년 전 집의 반찬은 마트에서 주로 제공해주셨고, 현재는 홈쇼핑에서 제공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참 귀여우신 저희 친정 엄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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